에피소드 3. 포스 컨플릭트(force conflict)
1장. 어텀 리브즈
조준기 너머로 희미하게 도망치는 남자가 보였어요. 남자는 겁에 질려 그만 제 발에 넘어졌습니다. 다시 서둘러 일어나 살인마의 눈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어요. 시간이 그의 발목을 붙잡고 놔주질 않았어요. 마치 슬로우 모션이 걸린 듯했어요. 남자는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켰어요. 하지만 실타래처럼 다리와 팔이 서로 얽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어요. 그리고 다시 남자가 조준기 안으로 들어왔어요. 이번에는 초점이 맞듯이 남자의 뒷모습이 또렷해졌어요. 방아쇠가 당겨졌습니다. 남자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어요. 최선을 다해, 전력을 다해 도망쳤지만, 결말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남자의 목에서 피가 솟구쳤어요. 남자는 앞으로 기어갔습니다. 의식은 희미해져 가지만, 생존의 본능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어요. 만약 영혼이 있다면, 투명한 미립자로 이뤄진 에너지의 집합일지 모르겠어요. 죽음은 단단한 피부를 뚫고 모든 삶의 에너지가 흘러나오는 전환의 과정일지도 모르겠어요.
미립자가 빠져나온 육신은 기능을 멈추고, 결국 소멸하지만, 의식의 미립자는 우주에서 원래의 모습으로 온전히 결합되어 존재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남자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었어요. 그리고 다시 한번 조준기 안으로 남자가 들어왔습니다. 다시 한번 방아쇠가 당겨졌습니다. 둔탁한 총소리가 울려 퍼지고, 탄환은 의도한 대로 이번에는 정확히 머리를 관통했습니다. 영혼의 미립자가 순식간에 빠져나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세상은 피로 가득했습니다. 그건 지옥이 다녀간 흔적 같았습니다. 뿌연 화약 연기가 불길한 안개처럼 사방을 가득 채웠습니다. 깨진 소초의 유리 너머로 바람이 불어오자, 서서히 연기가 걷히기 시작했어요. 천천히 그놈의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놈은 가슴으로 K2 소총의 총구를 가져다 두었어요.
녹슨 쇠기둥에 아무렇게나 대충 묶어둔 빨랫줄에는 이름이 적힌 속옷들이 줄지어 걸려 있습니다. 그 속옷들 사이로, 소초로 사용하는 작은 건물 한 채가 보입니다. 불이 꺼진 채로요. 그리고 깨진 유리창 사이로 끈적한 피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잠시 뒤, 불쾌한 총성과 함께, 불빛이 번쩍하고 건물 안을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군 수사관이 브리핑을 마치자, 사방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어요. 유가족들이 욕설을 하고, 드러눕고 오열했습니다. 몇몇은 헌병대를 밀치면서 몸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언론사 카메라는 놓칠세라 모든 장면을 담았습니다. 여기저기 질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수사관은 자신이 아는 것과 목격한 것과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실들을 구분하여 대답했습니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습니다. 악마가 지나간 곳에 지옥이 머물렀고, 비극으로 기록됐습니다.
사실 나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그저 남자가 쓰러져 있던 자리를 바라만 보았어요. 남자의 시도가 실패한 곳, 생존의 가능성이 박탈당한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남자가 버둥거리며 안간힘을 썼던 곳 말입니다. 거기에는 더 이상 남자는 없었어요. 남자가 남겼던 생존을 위한 노력과 잔인한 폭력만이 흔적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 아이는 죽었습니다. 두 발의 총알로요. 첫 번째는 목에, 두 번째는 머리에.
굳이 두 번째 총탄이 아니었더라도, 아이는 살아 남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 자식은 확실하게 하고 싶었나 봅니다. 자기 계획을요. 그건 우리 아이를 죽이는 것, 그러니까 돌이킬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죠. 나는 납득이 되지 않았어요. 왜 그렇게까지 하고 싶었던 걸까요. 인간이라면, 그러니까 타인의 감정과 고통을 이해하는 존재라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요? 그도 가족이 있고, 사랑하는 무엇인가가 있을 텐데요.
갑자기, 목구멍에서 먹었던 음식들이 꿈틀대며 밀려 올라왔습니다. 그 역겨움에 내 뱃속에 든 모든 것들을 토해내고 싶었습니다. 나는 몇 번이고, 잡풀들을 향해 헛구역질했지만, 아무것도 토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7명이 죽고, 2명이 중상인 채로 발견된 사건이었습니다. 한 명은 위독한 상태로 사망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언론에서는 온종일 이 사건으로 도배되다시피 했어요. 곧 유가족 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사망자의 한 아버지가 대표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언론사와 인터뷰하며 군 관리 체계의 부실함을 질타하고, 신속하고 투명한 수사를 촉구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날의 비극이 시간별로 자세히 드러났습니다.
태평양에서 발생한 태풍이 오키나와를 거쳐 북상하고 있었습니다. 예보에 따르면 36시간 뒤에 한반도 남단을 거쳐 동해안으로 지나갈 예정이었습니다. 바람이 간간이 강하게 불어왔지만, 습도는 최고조에 이르렀죠. 며칠 동안 지치고 불길한 밤이 이어졌습니다.
밤 11시 55분, 살인자 그놈은 순환 경계 근무를 교대하고 부대로 복귀하는 길이었습니다. 불빛 하나 없는 컴컴한 길이었어요. 말없이 같이 경계근무를 선 후임병 뒤를 따라갔어요. 소초에 거의 도착할 무렵, 오랫동안 봐두었던 가장 어두운 구석에서 개머리판으로 사정없이 후임병의 머리를 휘갈겼어요. 후임병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로 속수무책으로 쓰러졌습니다. 머리가 박살 나고, 박살 난 두개골의 틈 사이로 피가 흥건히 흘러나왔습니다. 그러고는 후임병의 탄창을 집어 들고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었습니다. 손에는 피가 묻어 나왔습니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바지에 쓱쓱 닦고는 소초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안전쇠가 찰칵하면서 풀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사실 나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그저 남자가 쓰러져 있던 자리를 바라만 보았어요. 남자의 시도가 실패한 곳, 생존의 가능성이 박탈당한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남자가 버둥거리며 안간힘을 썼던 곳 말입니다. 거기에는 더 이상 남자는 없었어요. 남자가 남겼던 생존을 위한 노력과 잔인한 폭력만이 흔적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 아이는 죽었습니다. 두 발의 총알로요. 첫 번째는 목에, 두 번째는 머리에.
굳이 두 번째 총탄이 아니었더라도, 아이는 살아 남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 자식은 확실하게 하고 싶었나 봅니다. 자기 계획을요. 그건 우리 아이를 죽이는 것, 그러니까 돌이킬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죠. 나는 납득이 되지 않았어요. 왜 그렇게까지 하고 싶었던 걸까요. 인간이라면, 그러니까 타인의 감정과 고통을 이해하는 존재라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요? 그도 가족이 있고, 사랑하는 무엇인가가 있을 텐데요.
갑자기, 목구멍에서 먹었던 음식들이 꿈틀대며 밀려 올라왔습니다. 그 역겨움에 내 뱃속에 든 모든 것들을 토해내고 싶었습니다. 나는 몇 번이고, 잡풀들을 향해 헛구역질했지만, 아무것도 토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7명이 죽고, 2명이 중상인 채로 발견된 사건이었습니다. 한 명은 위독한 상태로 사망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언론에서는 온종일 이 사건으로 도배되다시피 했어요. 곧 유가족 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사망자의 한 아버지가 대표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언론사와 인터뷰하며 군 관리 체계의 부실함을 질타하고, 신속하고 투명한 수사를 촉구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날의 비극이 시간별로 자세히 드러났습니다.
태평양에서 발생한 태풍이 오키나와를 거쳐 북상하고 있었습니다. 예보에 따르면 36시간 뒤에 한반도 남단을 거쳐 동해안으로 지나갈 예정이었습니다. 바람이 간간이 강하게 불어왔지만, 습도는 최고조에 이르렀죠. 며칠 동안 지치고 불길한 밤이 이어졌습니다.
밤 11시 55분, 살인자 그놈은 순환 경계 근무를 교대하고 부대로 복귀하는 길이었습니다. 불빛 하나 없는 컴컴한 길이었어요. 말없이 같이 경계근무를 선 후임병 뒤를 따라갔어요. 소초에 거의 도착할 무렵, 오랫동안 봐두었던 가장 어두운 구석에서 개머리판으로 사정없이 후임병의 머리를 휘갈겼어요. 후임병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로 속수무책으로 쓰러졌습니다. 머리가 박살 나고, 박살 난 두개골의 틈 사이로 피가 흥건히 흘러나왔습니다. 그러고는 후임병의 탄창을 집어 들고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었습니다. 손에는 피가 묻어 나왔습니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바지에 쓱쓱 닦고는 소초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안전쇠가 찰칵하면서 풀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당신도 느꼈습니까? 이것을 무엇이라고 해야 합니까?
곧 내 삶이 무너지고, 나를 절망의 지옥으로 가두는 경고를. 내게 원한을 가진 자가, 무덤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요. 내가 이뤄낸 모든 것, 내가 지켜야 할 모든 것을 파괴하려고 관뚜껑을 부수고 나오는 소리를 말입니다. 내가 아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순간이 기회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 틈을 타 나를 완전히 굴복시켰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내 아이가 서 있는 곳으로부터 수백 킬로 떨어진 장소에서.
그러니까 마치 히말라야 능선의 어딘가에서 길을 잃은 등반가가 보낸 구조의 요청 메시지를 애써 무시해야 하는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놈이 소초 입구에 다다르자, 탄창이 바닥날 때까지 마구잡이로 쏘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상상했던 일이었는지 주저함 따위는 없었습니다. 총알은 사방을 향해 발사되었어요. 학살의 시간은 그리 길지도, 특별히 누구를 선택하지도 않았어요. 총알은 그대로 심장과 폐와 다리, 얼굴을 가리지 않고 관통했습니다. 몇몇은 저항하지도 못하고 누운 채로 사망했고, 몇 명은 깨어나서 숨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체력 단련실에 숨어있던 한 명을 마저 사살하고 나서야 놈은 찬찬히 머릿속으로 쓰러져간 사람들의 숫자를 세기 시작했습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그때 깨달았어요, 하나의 숫자가 비어 있다는 것을요. 놈은 다시 총을 바짝 가슴에 기댄 채,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소초의 벽에 숨죽이고 있던 아이를 발견합니다. 내 아이 말이에요. 아이는 있는 힘껏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조준경 너머로 희미한 내 아이가 보입니다.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니면, 바위틈이든, 풀숲이든, 그게 어디든 바짝 엎드려 숨어 있었으면 더 나았을 텐데 말이에요. 그것도 아니라면, 차라리 칼이든, 총이든, 돌덩이든 뭐든 들고서 몰래 그놈 뒤를 내리쳤으면 좋았을 텐데. 아이는 도망치는 걸 선택했습니다. 잘 뛰지도 못하면서 말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매번 달리기 시합에서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아이였는데. 뛰는 걸 죽도록 싫어하던 아이였는데, 왜 하필. 내가 분명히 위험한 일이 생기면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말했는데. 몇 번이고 그렇게 주의를 줬는데, 왜 그랬을까요. 왜 내 말을 듣지 않았는지.
조준경에 또렷이 아이가 보입니다. 내 아이가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내 힘이 닿지 않는 곳에서, 안간힘을 쓰고 도망치는 나의 어린아이가 보입니다.
두 번의 총성이 울려 퍼졌어요. 첫 번째는 목을 관통하고, 두 번째는 머리를 관통했습니다. 아이의 머리는 산산조각이 났어요. 바보같이,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그대로 목숨을, 세계의 전부를 내어 주었습니다.
내가 움직이지 말고 분명히 가만히 숨어 있으라 했는데. 애들은 왜 부모 말을 듣지 않는 건지. 잘 뛰지도 못하면서요. 바보 같은 놈.
그러니까, 내가 입장권을 끊는 동안 그 자리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는데, 늦은 밤 당장 너를 데리러 갈 수 없었을 때, 술에 취한 그자가 패배와 좌절의 감정을 폭력으로 드러낼 때, 그자가 눈에 띄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짓밟을 때,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그 자리에 숨죽이고 있으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나는 곧 도착하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분명히 여러 번 내가 말했는데. 멍청한 놈.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나를 지켜주겠다고, 내 곁에 머무르면서 나를 행복하게 해주겠다 해놓고.
수사관들 사이에서 포승줄에 묶인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어요. 그는 전역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병장의 신분이었습니다. 키 작고 깡마른 체격의 남자는 불안한 듯 안경을 만지작거렸어요. 스스로 죽을 용기도 없는 놈, 내 아들은 정확히 사살하면서 정작 자신은 제대로 맞추지 못한 놈, 겁쟁이에 위선자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곧이어, 변호인과 수사관, 생존한 장병의 증언이 몇 시간에 걸쳐 이어졌습니다. 그 내용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어요. 따돌림이 있었고, 고문과 다를 바 없는 학대로 이어졌습니다. 비정하고 잔인한 폭력이 만연했고, 잔혹한 행위들이 서슴없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아이는 적극 가담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아이가요. 몇몇 사건을 주도했고, 그건 악마가 벌인 짓과 별반 다를 바 없었습니다. 살아남은 군인이 확인해 주었습니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우리 아이가 그런 짓을 했다는 걸 수긍할 수가 없었습니다. 술에 잔뜩 취한 그자가 비틀거리며 집에 들어와서는 마구잡이로 폭력을 행사하던 그날, 용기를 내어 그 주먹을 감내하고 나를 보호해 주던 어린 아들이었습니다. 늘 내게 따뜻한 말만 하던 아이였습니다. 버려진 고양이를 데려다 키우고, 허브를 키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애플민트를요. 그걸 따다가 차가운 물에 띄워서는 나에게 가져다주었어요. 가끔씩 피아노도 쳤어요. 어렸을 때 일 년 동안 배웠는데, 그때는 썩 잘하지는 못했어요. 조금 커서는 취미 삼아 틈틈이 했습니다. 나중에 들어봤는데 실력이 꽤 괜찮더군요. 내 생일날 어텀 리브즈(Autumn Leaves)를 연주해 줬어요. 왜 내가 피아노를 더 시키지 않았을까, 후회했습니다. 달리기는 잘 못했지만, 아이들과 어울려서 늦게까지 축구를 하곤 했어요. 아이는 중앙 수비수를 했고, 팀을 위해 희생했습니다. 중앙 수비수가 하는 일이죠. 모범적이고 친절하고 따뜻한 아이입니다. 그걸 내가 어떻게 모를 수가 있나요.
자세한 증언이 이어지는 동안 사방에서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낮고 절망적인 숨소리는 총알이 되어 내 가슴을 향했어요. 사방에서 나를 겨냥하고 있었습니다. 군사 법정에서 살인자를 몰아세울수록 더 잔인한 이야기들이 새롭게 쏟아져 나왔습니다. 법정에서 누군가 그랬습니다. 살인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맞는 말이죠.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를 해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그 한마디에 범인은 입을 닫아버렸습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더 이상의 진술과 증언을 거부했어요. 영원히 입을 닫아버렸습니다.
나는 뭐라도 해야 했어요. 아들을 구해야 했습니다. 미립자의 덩어리가 되어 우주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아들을 위해서요. 나는 알아요, 이번에 아들은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는 것을요, 아마도 교훈을 얻었겠죠? 나는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들이 죽어간 자리에. 이번에야말로 구조의 메시지를 외면하지 않고, 히말라야 능선 어딘가로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공개된 수사 기록을 밤새 보았어요. 최대한 집중해서 반복해서 보았습니다. 내가 놓치는 것이 있는지, 혹시 그들이 말하지 않은 것이 있는지 알아내려고 했어요. 죽은 아이의 시신을 매일 같이 마주했고, 아이가 군 생활에서 남긴 기록들, 군대와 정부와 관련된 모든 사건을 빠짐없이 읽어 내려갔습니다. 인터넷에서 나는 뭐든 뒤졌습니다. 그날의 날씨, 교통상황, 두시부터 네시까지 거리 행진 집회로 인해 시내가 막히고, 태풍으로 인해 예정되어 있던 마라톤 대회가 취소되고, 낡은 하수도관을 교체하기 위해 골목의 일부 구간이 통제된 사실까지. 그러니까 나는 그날의 모든 일들을 머릿속에 넣고, 지도를 그리듯 세세하게 재현해 나갔습니다. 그날 전부를 말입니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발견했어요. 우회 프록시로 정체를 숨긴 비밀의 웹사이트를요. 진실을 숨기고, 가짜 희생자를 내세워서 자기들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자들을 폭로하는 사이트를요. 정부와 군대, 거기에 기생하는 파렴치한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가져올 재앙과 파괴, 종말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종말은요, 선량한 사람들을 향해 조준됩니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거라는 순진하고, 순응적인 인간들을 향해 발사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 웹사이트는 우리를 지배하는 상식과 필연, 운명을 거부하고,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그 힘은 이미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으니, 의심하지 말고 믿음을 따라가라고 충고합니다. 그걸 통해 생존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죠. 그 힘을 나는 포스 컨플릭트(force conflict)라고 부릅니다.
나는 이제서야 모든 진실을 완전한 형태로 조립할 수 있었어요. 내가 아는 것과 그들이 감추고 있는 것들, 아직 드러나지 않는 것들을 구분하여 그날의 세계를 펼쳐놓을 수 있었어요. 알다시피, 내 머리 안에는 그날의 전부가 모두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준기 너머로 희미하게 아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멍청한 그놈은 빨리 도망칠 능력도 없으면서 사력을 다해 뛰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제멋대로 허우적거리는 풍선 인형 같습니다. 놈의 조준기 안으로 또렷이 우리 아이가 보입니다. 숨소리가 멈추고 손가락이 방아쇠를 천천히 당깁니다. 이미 머릿속에서 백만 번도 넘게 본 장면이에요. 그리고 나는 드디어 아이에게 시선을 거둡니다.
그러니까 어떤 강력한 힘에 이끌려, 내재되어 있는 진실과 마주할 용기를 작동시킵니다. 그렇게 나는 그놈을 볼 수 있었어요. 나의 아들을 죽인 멸망의 괴물을요. 그는 전역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병장이 아니었어요. 분명히 아니었습니다. 그놈은 공산주의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검게 그을린 피부 위로 폭력이 할퀴고 지나간 흉터들이 남겨져 있었어요. 눈동자는 분노로 불타오르고 있었어요. 거기에는 인간성이라곤 없었죠. 지시받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려는 목표만 존재하는 미래에서 온 인간형 로봇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공산주의자는 냉정하고 침착한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며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그렇게 두 번의 총성이 울렸고, 하나는 목을, 하나는 머리를 관통했어요.
오랫동안 특수 군사 훈련으로 완벽하게 조직된 공산주의의 군대였습니다. 적들은 은밀하게 비무장 지대를 넘어와서는 신속하게 모든 일을 처리했어요. 우리 아들을 본보기 삼아, 그들이 애초에 의도한 대로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작은 세계를 완전히 절멸시킴으로써, 같은 방식으로 다른 세계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확고한 메시지를요.
그러니까, 적들의 목적은 자신들이 가진 무력의 우월함을 과시하고, 우리 체제를 교란해서, 망신 주려는 목적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실이에요.
우리의 체제는 이 모든 것을 부정하기 위해, 가장 나약하고 힘없는 자, 노예처럼 저항하지 못하고 복종하는 자를 내세우고 은폐했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그의 입을 닫아버리게 했습니다. 그렇게 사건의 실체는 봉인되어 버렸어요. 오키나와를 거쳐 빠른 속도로 지상에 도착한 강력한 태풍 속으로 영영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항하지 않는 자에게 폭력은 계속된다는 것.
적들은, 반드시 다시 옵니다.
더욱 강력해진 무기와 전술, 사상으로 무장 공산주의자들. 우리의 체제가 완전히 파괴되고, 더 이상의 희생양도 남지 않을 때까지.
저기 조그만 조준기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를 보세요.

2장. 눈을 감고
<공통> 그리고 나는, 잠시,
<개별> 조준기 너머 희미한 형상으로 도망치는 아들을,
<공통> 눈을 감고, 생각했어요.
<개별>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계획에 희생된 보잘것없는 우리 아이에 대해 말이에요. 나는 후회합니다. 아이의 모자란 재능을 채워 줘야 했어요, 그래서 더 빨리 뛰고, 더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게, 그래서 아이가 생존의 기회를, 그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게 도와야 했어요. 운명을 벗어날 기회를 나의 무지 탓에 받지 못했습니다. 적들이, 국경을 넘어온 잔혹한 공산주의자들이 결국 해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진실을 은폐한 자들. 우리 안에 적들, 공산주의자들과 다를 바 없는.
<공통> 과학자, 연구가, 행정가, 군인, 정부와 협력하는 어용 지식인. 그리고 예술가.
절대로, 분명히, 결코, 그들을, 그자들을, 사이비들, 그 기회주의자들을, 빼고는 단 한마디도, 그것이 뭐든 간에, 이야기할 수가, 결단코, 없습니다.
<개별> 살려고 발버둥 치는 불쌍한 아이를 보세요.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자식이 얼마나 비참하게 되는지를요.
그리고 아이를 향해 방아쇠가 당겨집니다. 두 발의 총성이 울렸어요. 한발은 무력의 우월함을 선전했으며, 다른 한발은 체제의 존속을 위해 진실을 은폐했습니다.
그리고 그자들이 나에게 기만하려고 했던 것, 평범한 인간을 악의 세력으로 둔갑시킴으로써, 자기들의 잘못을 은폐하는 것이 가능할 거라는 믿음,
그러니까 산산이 조각난 채 발견된 나의 아들과,
입을 닫아버린 그놈과,
거짓 증언을 강요받은 생존자,
그리고 달리기를 가르치지 않은 나까지.
<공통> 그런 걸 사람들이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요?
<개별> 희생양. 나는 이제 이 조작된 세계에 대응을 시작할 것입니다. 이 힘의 논리를 극복하기 위해, 복수의 미립자로 구성된 에너지를 끌어낼 겁니다. 그것은 바로 포스 컨플릭트. 자, 보세요. 희생양이 찾아낸 것을요.

<공통> 그리고 이 웅장하고 거대한 소리에 눈을 뜨자,
<개별> 드디어 군사분계선을 넘어서 진격해 오는 공산주의자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내가 그랬잖아요, 적들은 반드시 다시 온다고.
그러니까, 혹독한 훈련으로 타버린 적들의 피부는 검붉은색을 띠고 있었어요. 등에 멘 가방에는 온갖 살인 도구와 최신식 무기로 가득했습니다. 손에는 우리식으로 개량된 AK 소총이 들려 있었고, 가슴에는 수류탄이 열매처럼 매달려 있었어요. 어찌나 빠르고 신속하게 비무장 지대를 통과했는지, 온몸에 열기가 가득했습니다. 마치, 총알이 발사된 총구 같았습니다. 적들은 지치지도 않았어요. 한 번도 쉬지 않은 채 가파른 비탈길을 빠르게 넘어와서 초소에 접근했습니다. 총에는요, 소음기가 달려 있었어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기능하는 장비죠. 적들은 우선 경계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병력을 노렸습니다. 노련하게 정확히 머리를 맞췄어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소음기가 하는 일이죠. 그리고 두 개 조로 나뉘어서는 흩어졌습니다. 한 조는 소초로 들어갔고, 나머지 다른 조는 바깥을 살폈어요. 이윽고 총이 난사됩니다. 검은 하늘이 번쩍거립니다. 소초의 창문이 깨지고, 사방으로 피가 튑니다. 바깥을 경계하던 적들은 아이들이 숨어있을 만한 장소를 뒤지기 시작합니다. 체력 단련실에 이어폰을 귀에 꽂고 누운 채로 역기를 드는 아이가 보이네요. 공산주의자는 천천히 아이 곁을 다가가며 총질을 해댑니다. 아이는 맥없이 역기를 손에서 놓칩니다. 쇳덩이가 목을 짓누르며 내려앉습니다. 이윽고 머리와 가슴에서 피가 솟구칩니다. 놈은 주변을 둘러봅니다. 인기척이 들리자, 놈은 아무 곳이나 총을 발사합니다. 그리고 찢어진 비닐 틈 사이로 도망가는 아이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빌어먹을 공산주의자 놈의 표적이 아이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한발, 두발, 아이는 멀리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개별> 드디어 군사분계선을 넘어서 진격해 오는 공산주의자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내가 그랬잖아요, 적들은 반드시 다시 온다고.
그러니까, 혹독한 훈련으로 타버린 적들의 피부는 검붉은색을 띠고 있었어요. 등에 멘 가방에는 온갖 살인 도구와 최신식 무기로 가득했습니다. 손에는 우리식으로 개량된 AK 소총이 들려 있었고, 가슴에는 수류탄이 열매처럼 매달려 있었어요. 어찌나 빠르고 신속하게 비무장 지대를 통과했는지, 온몸에 열기가 가득했습니다. 마치, 총알이 발사된 총구 같았습니다. 적들은 지치지도 않았어요. 한 번도 쉬지 않은 채 가파른 비탈길을 빠르게 넘어와서 초소에 접근했습니다. 총에는요, 소음기가 달려 있었어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기능하는 장비죠. 적들은 우선 경계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병력을 노렸습니다. 노련하게 정확히 머리를 맞췄어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소음기가 하는 일이죠. 그리고 두 개 조로 나뉘어서는 흩어졌습니다. 한 조는 소초로 들어갔고, 나머지 다른 조는 바깥을 살폈어요. 이윽고 총이 난사됩니다. 검은 하늘이 번쩍거립니다. 소초의 창문이 깨지고, 사방으로 피가 튑니다. 바깥을 경계하던 적들은 아이들이 숨어있을 만한 장소를 뒤지기 시작합니다. 체력 단련실에 이어폰을 귀에 꽂고 누운 채로 역기를 드는 아이가 보이네요. 공산주의자는 천천히 아이 곁을 다가가며 총질을 해댑니다. 아이는 맥없이 역기를 손에서 놓칩니다. 쇳덩이가 목을 짓누르며 내려앉습니다. 이윽고 머리와 가슴에서 피가 솟구칩니다. 놈은 주변을 둘러봅니다. 인기척이 들리자, 놈은 아무 곳이나 총을 발사합니다. 그리고 찢어진 비닐 틈 사이로 도망가는 아이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빌어먹을 공산주의자 놈의 표적이 아이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한발, 두발, 아이는 멀리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개별> 그리고 내 차례가 왔습니다. 나는 그 비정한 빨갱이, 볼셰비키의 조준기로 걸어 들어갑니다. 그리고 나는 손을 번쩍 들고는 나의 믿음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내 아들을 죽인 자, 그러니까 내 세계의 전부를 멸망시킨 놈들. 고작 불쌍한 애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무력을 자랑하고, 적들을 망신 주는 것밖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저열한 놈들, 그리고 진실을 가리고 그 수작에 같이 놀아나는 놈들, 그러니까 공산주의자와 다를 바 없는 놈들. 그들에게 똑같이 해줄 것입니다. 내가 깨달은 힘으로요. 이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영혼의 미립자라고 해두죠, 이해하기 편하게.
파멸의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은 바로 포스 컨플릭트.
내가 진실과 마주했듯이 당신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단 한 명의 희생양도 남지 않을 때까지, 좀비 떼처럼 끝없이 공격해 오는 적들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럴 거라고 나는 믿습니다.
내 아들을 죽인 자, 그러니까 내 세계의 전부를 멸망시킨 놈들. 고작 불쌍한 애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무력을 자랑하고, 적들을 망신 주는 것밖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저열한 놈들, 그리고 진실을 가리고 그 수작에 같이 놀아나는 놈들, 그러니까 공산주의자와 다를 바 없는 놈들. 그들에게 똑같이 해줄 것입니다. 내가 깨달은 힘으로요. 이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영혼의 미립자라고 해두죠, 이해하기 편하게.
파멸의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은 바로 포스 컨플릭트.
내가 진실과 마주했듯이 당신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단 한 명의 희생양도 남지 않을 때까지, 좀비 떼처럼 끝없이 공격해 오는 적들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럴 거라고 나는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