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 에너지 콩트아레(énergie contraire)


1장. 리턴 오브 고지라


멍청한 인터넷. 통신이 끊길 수도 있겠어요. 기상 상태가 좋지 않거든요. 파도가 모든 걸 삼킬 듯이 달려듭니다. 직접 보지 않는다면, 상상하기 힘들 거예요. 그러니까 가늠하기도 힘든 높이의 파도가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쏜살같이 달려와서 복싱선수처럼 어퍼컷 펀치를 치고 가는 것 같습니다. 이런 공격에 밤새 시달립니다. 막을 수 있는 방법이란 건 없어요. 향이나 피우고, 밤새 속죄하면서 기도하는 방법밖에 없죠. 그러다 라운드가 갑자기 끝나면 잠깐 휴식 시간이 찾아옵니다. 평화로울 것 같지만, 천만에요. 바다는 다시 세계의 온 힘을 끌어모아서 저 심해의 암흑층 어딘가에 에너지를 집약해 둡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다음 라운드로 넘어가는 종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울려 퍼지면, 정신이 번쩍 드는 거죠. 아시겠죠? 이제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아까 말했죠? 막을 방법은 없다고요. 그저 바다가 분이 풀릴 때까지 온 힘을 다해 버티는 것 외에는요. 이 강력하고, 집약적이며, 끊임없는 치명적인 에너지를 버텨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걸 나는 카운터 에너지라고 부릅니다. 내가 만든 개념이죠. 멋지지 않나요, 카운터 에너지. 그걸 이렇게도 부를 수도 있어요, 에너지 콩트아레(énergie contraire), 게게너지(gegenenergie), 타카 무다드다흐(طاقة مضادة). 뭐든 원하는 대로 부르면 됩니다. 저는 에너지 콩트아레로 할게요.

우선 에너지 콩트아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오브 디스트럭션(energy of destruction)부터 언급해야 할 것 같아요. 에너지 콩트아레는 반 에너지의 형태를 띠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근본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와 유사합니다. 작용이 전제되기 때문에 반작용이 발생하는 것이죠. 하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반작용의 예시를 이어가도록 할게요.

반작용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작용이 작동하기 전까지요. 작용은 보편적인 원리인 것 같지만, 잠깐만 시각을 넓게 보겠습니다. 작용이라는 것은 사건의 시작이기에, 그런 관점에서는 사건의 시작 이전에는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반작용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반작용 역시 작용의 연장이자, 힘의 구분일 뿐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물리학의 한계이자, 대중이 싫어하는 이유입니다. 한계를 명확히 하고, 돌파구를 마련할 수 없는 이야기가 전부죠. 가능성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물리학의 세계에서 우리는 손 놓고 죽음을 기다리는 무력한 말기 암 환자 같을 뿐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학문이죠. 그것이 물리학의 전부입니다. 아시겠나요?

에너지 콩트아레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그것이 사건 이전부터 이미 내재된 힘이라는 점입니다. 익히 알고 있는 근본적인 힘이며, 사건을 통해서만 에너지 콩트아레로 전환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마치 사랑과도 비슷해 보입니다. 사랑의 힘은 언제나 내면에 자리하고 있지만, 육체 깊은 곳에 숨겨두고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번뜩이는 무엇인가와 조우하게 되는 것이죠. 때로는 다정한 태도로 깊은 관심을 드러내는 친절하고 차분한 목소리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합니다. 그녀의 디올 향수가 자욱한 안개처럼 깊숙이 침투해 나를 둘러싼 모든 세계를 지배합니다. 짧고 단호한 헤어 스타일을 통해서 그녀가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의 미학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것은 예술, 사실 예술보다 더 숭배하고 싶은 것, 가능성이 사라진 이 물리학의 세계에서 다시 믿음을 불러오는 순간입니다. 나는 이제 뭐든 할 수 있으며, 동시에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마력의 세계로 진입하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세계는 오로지 그녀뿐입니다. 그 이상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내가 그녀를 지배하든, 식민화되든 상관없습니다. 나는 오로지 그녀만 필요로 합니다. 그렇게 집중하고 몰입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힘, 에너지 콩트아레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에너지 콩트아레도 사랑의 힘처럼, 정확히 필요한 만큼의 에너지만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마치 중력처럼요. 낙하하는 물체의 무게와 비례하여 중력은 필요한 에너지만을 사용하는 것이지요.

그래요, 에너지 콩트아레는 과잉 생산하지 않습니다. 흘러넘친 채로 우리의 삶을 끈적거리게 하는 기분 나쁜 욕망의 탄산 과당 음료가 되도록 놔두질 않습니다. 오로지 삶의 잔에 채워진 스윗한 무설탕 열대음료처럼. 절대 넘쳐흐르지 않는 사랑의 파도가 되어 잔 속에서 찰랑거릴 뿐이죠. 아름답지 않나요?

하지만, 에너지 콩트아레의 아름다움과는 별개로, 아직 나는 매일 비참한 삶과 마주합니다.

그러니까, 나는 여기서 대접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하며,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배제되어 있으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방에서 잠을 청합니다. 물론, 오늘처럼 잠이 들지 못하는 날이 있습니다.

그럴 때면 나는 이곳에서 그동안 모아둔 수상한 사건들의 파편들을 꺼냅니다. 물론 머릿속으로요. 그리고 몇 번이고 재구성하며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는 가정들을 찾아냅니다. 에너지 콩트아레는 그 보잘것없는 파편들 속에서 발견한 우주 중의 하나였지요. 그들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나는 찾아낸 것. 앞서 말했듯이 나는 중요한 의사 결정에서 늘 배제되었습니다. 대접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한 채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방에서 잠들기 전에, 그러니까, 그 순간에 비로소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위대한 에너지를요.

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앞으로 하는 내 모든 말은 진실이니까요. 내가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배제되어있다고 해서, 진실을 말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그 부분을 헷갈려 하죠. 진술의 신빙성은 조직에서의 위치, 개인의 능력, 부르주아적 배경에서 결정되니까요. 그러니까 당신이 진실에 가까이 가고 싶다면, 편견을 버리고, 사이비 믿음에서 벗어나세요. 그리고 하나 더, 만약 당신 주변에 예술가, 과학자, 정치인, 변호사, 정부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 그리고 그자들의 친구가 있다면 모두와 손절하시고요.
당신도 느꼈습니까? 이것을 무엇이라고 해야 합니까?

내가 이곳에서 하찮은 시중이나 들고 있다고 해서 내가 이것을 눈치채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니까 중요한 의사 결정에서 배제되어있다고 해서, 모든 것에도 침묵하고, 진술이 부정당해도 된다고 생각하나요?

사건의 조각들 틈에서 생성되는 우주의 세계, 그러니까 밝혀지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들여다볼 능력도 없고, 재능도 없으며, 실력도 없고, 소질도, 자질도, 역량도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발견했습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방에서, 똑같은 크기로 줄지어 복사해서 붙여 넣듯 만든 이 방에서. 빌어먹을 탐욕스러운 건설사와 거기에 기생하는 건축가와 이 모든 것들을 허가해 준 모든 악의 정점인 정부와의 콜라보레이션 결과물, 이 방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방.

거기서 나는 에너지 콩트아레를 알아냈습니다. 대단하지 않나요?

문명 발생 이후로 그들이 정밀하게 쌓아왔던 체제의 질서, 다른 말로 하면 모순, 기만과 날조에 맞선, 카운터 에너지.

모든 걸 극복할 수 있는 사랑의 힘 말입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구체적이고 실체적이며 어디서든 항상 작동하고 있었던 것. 사랑의 힘, 카운터 에너지.

나는 이 바다 한가운데 거대한 은폐의 장막 너머, 비밀스럽게 연구하고 있는 심연의 괴물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살아 꿈틀대는 에너지의 집합체이자, 모순, 기만, 날조로 가득 찬 체제의 종말입니다. 진실로, 그것은 존재하며, 마침내 수면 밖으로 튀어나와 잠시나마 우리를 지배하게 될 파국으로 치닫는 사건 그 자체입니다.

불쌍한 것들을 보세요, 과학자, 연구가, 행정가, 군인, 정부와 협력하는 어용 지식인 그리고 예술가, 절대 그들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지요. 그들 모두는 심연의 괴수가 순순히 그들의 계획에 협조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야만적인 종을 무릎 꿇리고, 노예처럼 부릴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하여, 자기들을 적대시하는 모든 것들을 아예 멸망시키거나, 겁박하여 지구의 구석으로 내쫓고, 끝없이 추락하는 경제 침체의 곡선을 절대적인 힘으로 다시 끌어올려, 국제 시장 경제에서 약탈적 지위를 회복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모든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도래하는 미래를 식민주의의 시절로 데려다 놓을 것이라고, 그리고 여기에 협조하는 모든 자와 기업에게 더러운 배당금을, 그것도 어마어마한 이익을 나눠줄 거라고요.

도대체, 그들은 대학에서, 그보다 전문적인 상위 기관에서, 그러니까 풍요로운 배경으로 인해, 한 번도 좌절해 본 적 없는 삶을 누려온 자들, 자신이 똑똑해서 얻은 성과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들, 교육의 기회를 무한히 누려온 자들,

착취를 통해 얻은 이익을 기반으로 온갖 것들을 누려온 자들,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한 번도 배제되어 본 적 없는 그런 자들,

그렇게 똑똑한 자들이 고대의 괴물을 길들일 수 있다고 믿다니요.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나는 보았어요.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불길한 밤에, 우연히 창문 너머로 떠오르는 무엇을요.

나는 재빨리 휴대폰을 열고 사진을 찍는 데 성공했어요. 단 한 장만. 비록 얼룩이 묻은 두꺼운 유리창 너머로 기록된 사진이었지만요. 나는 더 많은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어요. 떨리는 손이 휴대폰을 놓쳤거든요.

나는 요동치는 심장을 부여잡고 얼굴을 최대한 창문에 밀착시켰어요.

드디어 그놈이 모습을 드러냈어요. 그리고 죽음처럼 소문내지 않고 나타나서는 잠깐 세계에 머물렀어요.

피부는 뜨겁게 끓어오르는 듯했어요. 살결에 닿은 차가운 바닷물이 곧장 수증기가 되어 흩날렸거든요. 웅크린 허리가 곧게 펴지자, 하늘에 닿을 듯이 가늠할 수 없는 크기로 서 있었어요. 이마 위로 흘러내리는 물은 마치 폭포가 쏟아지듯 수면으로 곧장 떨어졌어요. 곧 거친 숨소리가 이어졌어요. 그놈이 숨을 한번 쉴 때마다, 파도가 일렁거렸어요. 눈빛은 흔들림 없이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분명, 이 세계와 처음 마주하는 눈빛은 아니었어요. 어떤 귀찮고 하잘것없는 존재를 확인하려는 눈빛이었습니다.

그리고 놈은 자신의 손을 파도에서 들어 올렸어요. 손가락 틈 사이로, 물줄기가 흘러내렸어요. 깨끗한 손이었어요. 이전에 멸망시켰던 공포의 기억들이 깨끗이 씻겨 나간 그런 손 같았어요. 놈은 주먹을 움켜쥐더니 이내 다시 펼쳐 보았어요. 등에서 피부가 꿈틀거리더니, 멈춰 있던 나머지 근육도 일제히 깨어났어요. 그러고는 나지막이 울음소리를 냈어요. 그 소리는 마치 출항을 알리는 타이타닉호의 뱃고동 소리 같았어요. 그러고는 다시 바닷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놈이 사라지자마자, 파도가 그놈이 파헤친 바다의 상처, 충돌로 생긴 공간을 단숨에 메웠습니다. 흔적도 없이요.

그래요. 이제껏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압도적인 형태였어요. 그것은 거대하고, 불가항력적이며, 초월적이고, 절대적이었어요. 이것이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나는 속으로 적당한 이름을 생각했어요. 내가 아는 것 중에, 조금이라도 일치하는 것이 있는지.

언제까지 그것, 그놈, 괴물 따위로 부를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나는 그것을 고질라로 부르기로 결정했습니다.

정확히는 1984년에 제작된 고지라 「ゴジラ」입니다. 영어 제목은 Return of Godzilla, 고질라의 귀환이에요. 1954년 원작 영화의 재앙적인 고질라의 모습을 잘 계승한 작품입니다. 두 영화 모두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이자 동시에 파괴적인 잠재력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1954년 원작의 영화가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공포를 고지라의 모습으로 상징했다면, 84년의 영화는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핵무기의 위협을 비유했지요. 공교롭게도 이 비극적인 종말의 무기는 제국주의 식민시대의 종언이자, 냉전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식민주의가 끝났다고 실제로 약탈적 글로벌 식민 경제 체제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분명히 할 필요가 있지요.)

내가 84년의 고질라를 언급한 이유는 이 영화가 예언서 같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80년대 초반은 일본 버블 경제의 시작점이죠. 70년 고도 성장기 이후, 80년대 초반 낮은 엔화 가치로 인해 무역 흑자가 크게 상승했습니다. 80년대 중반이 되자 일본 정부는 저금리 대출을 크게 늘렸습니다. 기업과 개인을 막론하고 자산 구매를 위한 대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 자산이었습니다. 돈이 넘쳐나는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1985년이 되자, 미국이 일본과의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엔화 가치를 끌어올렸습니다. 플라자 합의가 바로 그것이죠. 그 일을 계기로 일본의 부동산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높아지기 시작했죠. 버블 경제. 그리고 90년대에 들어서자, 금리가 큰 폭으로 인상됩니다. 이로 인해,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대출금이 부동산 가치를 상회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깡통. 이제 이자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다다릅니다. 팔 수도 없습니다. 사는 사람도 없고, 팔아도 그 대출금을 다 갚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다가 펑.

이렇게요. 들리나요, 거품이 터지는 소리가. 모든 것은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어쩌면 또 다른 히로시마, 나가사키. 숫자로 타오르는 화염, 거품으로 만든 핵폭탄. 탐욕스러운 자들은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물론, 살아남은 사람도 있죠. 모든 악의 정점에 있는 자들, 바로 정부와 정치인들 같은 자들 말입니다. 이곳처럼 비밀스러운 기지를 짓고, 진실을 은폐하며, 강력한 힘을 사유화하려는 자들.

어쨌든,‘리턴 오브 고지라’는 풍요로운 85년의 일본을 파괴합니다. 곧 마주할 미래인 것이죠.

공교롭게도 나는 고지라가 무의식 기저에 깔린 집단적 공포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이미 합의하고 알고 있는 은폐된 진실 말입니다. 서방에 기대어 고속 성장한 제조 산업의 신화가 언제든 대체되고 무너질 수 있다는 것, 곧 사치스러운 샴페인이 바닥날 거라는 것, 그리고 우리가 곧 길바닥에 내던져지게 될 거라는 것, 이미 알지만 말할 수 없는 것, 그걸 두고 우리는 진실이라고 부릅니다.

빌어먹을 네트워크. 나는 이 모든 자료를 인터넷에 올리고 있어요, 아직 비공개이지만, 곧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공개할 거예요. 물론, 나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이 모든 힘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 물리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염세주의자들, 운명 결정론자들이 그런 자들이겠죠. 당연히 정부 기관의 사보타주도 있겠죠. 갈등을 조장하고, 증오와 경멸, 혐오를 통해 이익을 얻는 수법 말입니다.

그렇기에 나는 우회 프록시 서비스로 정체를 숨기고, 자료들을 올립니다. 진실이 비열한 공작의 대상이 되는 이상, 나의 정체는 저 깊은 바다 끝으로 숨어들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과 내가 통하는 유일한 문을 만드는 것이죠. 웹을 통해서요. 그 문을 뭐라 부르면 좋을까요?

당신이 무언가를 발견했다면, 그러니까 내가 말한 것들, 예를 들어 비밀 연구소, 고지라, 카운터 에너지 같은 것들과 관련해서요. 그 증거들을 목격했다면, 내가 만든 실체의 문, 이름이 무엇이든 상관없는 그 문, 그 프로토콜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21세기의 복음이자, 요한계시록이며, 종말을 대비한 서바이벌 핸드북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방에서, 나는 이렇게 위대한 결정의 중심에 있습니다. 나는 보았어요, 두 눈으로 똑똑히 말입니다. 이제 폭발만을 남겨놓은 응축된 에너지. 그러니까 고지라, 다시 말해두죠, 그냥 고지라가 아니에요. 리턴 오브 고지라.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죠. 이 무시무시한 분노의 응축 에너지를 통해 드디어 찾아냈습니다. 그 절망의 운명을 거부할 수 있는 용기를요.

그것이 바로 에너지 콩트아레입니다. 그리고 그 문을 이제 열어두려고 합니다.

자, 마지막 데이터 업로드가 끝이 나고 있어요. 개떡 같은 인터넷도 나를 막지는 못해요. 늦출 수는 있을지 몰라도요.

이제 심연에서 고동치는 무엇인가를 다시 느낍니다. 불길한 시그널이자, 재앙의 전조 말입니다.

2장. 눈을 감고


<공통> 그리고 나는, 잠시,

<개별> 이 모든 데이터의 업로드가 끝날 때까지

<공통> 눈을 감고, 생각했어요.


<개별> 이 보잘것없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공간에서요. 세상은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였어요. 그러자, 나를 가둬두었던 모든 사물들, 그러니까,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사유의 지도에서 경계와 한계를 규정하기 위해 세워 둔 ‘사물로 위장한 말뚝들’이 사라졌어요. 그렇기에 나는 3차원의 공간에서 해방될 수 있었어요. 무한히 뻗어가는 X와 Y와 Z의 좌표를 바라보았어요.

그리고 나를 무시했던, 그러니까 중요한 결정에서 나를 배제하고, 나의 증언을 신뢰하지 않았던 모든 자들.

<공통> 과학자, 연구가, 행정가, 군인, 정부와 협력하는 어용 지식인. 그리고 예술가.

절대로, 분명히, 결코, 그들을, 그자들을, 사이비들, 그 기회주의자들을, 빼고는 단 한마디도, 그것이 뭐든 간에, 이야기할 수가, 결단코, 없습니다.


<개별> 그렇게 나는 그들을 모조리 불러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 했던 짓, 나를 이 세계에서 위선자로 살도록 강요한 사실, 그들의 추악한 범죄에 협조하게 하고, 양심을 버리도록 종용한 사실을 하나하나 떠올렸습니다.

그로 인해, 나는 중심에서 멀리,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방으로 걸어 들어갔어요. 그러고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그들에게 복수할 기회만을 엿보는,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하는,

거기에만 온 신경을 몰두하는.


<공통> 그런 걸 사람들이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요?

<개별> 바로 패배자. 그리고 이 분노를 통해, 나는 에너지 콩트아레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목격했습니다. 리턴 오브 고지라를요. 그걸 통해 에너지 콩트아레를 증명했습니다. 자, 보세요. 패배자가 찾아낸 것을요.
<공통> 그리고 이 웅장하고 거대한 소리에 눈을 뜨자,

<개별> 심연에서 솟아오르는, 거대한 고지라를, 이번에야말로 자세히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회색빛을 띤 피부는 현무암처럼 거칠고 단단했어요. 지금 당장 마그마에서 꺼낸 듯, 온몸은 이글거리고 있었어요. 바다는 전기 주전자 속의 물처럼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온 세상이 순식간에 뜨거운 수증기로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 이제 막 폭발한 분화구가 내뿜는 화산재처럼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집어삼켰습니다. 놈은 허연 송곳니를 드러내며 바다의 끝을 향해 쳐다보았어요. 그러고는 거대한 꼬리를 하늘에 치켜들더니 이내 거세게 파도를 향해 내리쳤어요. 그러자 물기둥은 저항할 틈도 없이 하늘로 솟구쳤어요. 바다는 무릎을 꿇고 투항했습니다. 놈은 주먹을 움켜쥐고는 하늘을 향해 거칠게 울부짖었습니다. 나는 이전에 보았던 것, 경험했던 것, 읽고 학습했던 것, 상상했던 것들 어디에도 이런 불가항력의 힘을 본 적이 없습니다. 놈이 나를 향해 몸을 돌리자 드디어 온전한 형태가 드러났습니다. 수십 미터, 아니 수백 미터나 되는 거대한 몸집이었어요. 어떤 것도 비교할 것이 없기에 정확한 것은 아니에요. 고지라는, 거친 숨소리를 내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어요. 그러고는 예상한 대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기 시작했어요. 자신을 지배하고, 그 힘을 사유화할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을 향해, 불기둥을 내뿜었어요. 진실을 은폐하는 자들은 특별히 사지를 뜯어 버렸습니다. 악에 협조하는 모든 부역자들은 장례도 치르지 못하게 먹어버렸죠. 그래요, 지옥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에요. 지옥은 바로 여기, 우리 눈앞에, 매일, 다른 모습으로 펼쳐지는 세계의 다른 말입니다. 저기를 보세요. 세상이 이 모양인데. 우리는 이미 매일 벌을 받고 있지 않나요?
<개별> 결국 내 차례가 왔습니다. 나는 방에서 빠져나와 그놈을 똑똑히 쳐다보았어요. 나는 번쩍 손을 들고는 나의 믿음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내가 발견한 우주, 필요한 만큼의 잠재된 에너지, 물리학을 믿지는 않지만, 반작용 같은 거라 해두죠, 이해하게 편하게.

파멸에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은 바로 에너지 콩트아레.

이제 에너지 콩트아레를 믿으세요. 내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절망의 방에서 빠져나왔듯이 당신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웹에 정리해 두었어요. 프로토콜을 거부하지 말고, 종말의 서바이벌 핸드북을 참고하세요.

그렇게 하면 당신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아마도, 그럴 거라고 나는 믿습니다.